봄이 오면 다시 오라
작. 강현석
“예술은 공평하다. 부자와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상관없이 캔버스와 붓만 있다면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는 혼잡한 상황에서도 온 힘을 다해 자신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본 범일동의 사람들도 그러했다. 그들은 묵묵히 그들의 붓으로 자신들만의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어떠한 비바람이 불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
시련과 함께 나아가는 것.
이중섭이 그러했듯, 범일동 사람들이 그러하듯,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캔버스를 그려나가는 것.”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는 야생화가 될 수 없다. 처음 느끼는 비바람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월세조차 제때 내지 못해 밀린 고지서들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몇 년간의 폐인 생활로 갈 곳이 없던 나는, 그저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정신을 차린 나는 기차역에 앉아 있었다. 가만히 기차역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한참을 보다가 문득, 그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때 내 눈에 ‘비운의 천재 화가 이중섭을 기리며-부산시 동구청’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수중에 내게 있던 돈은 3만 원 남짓, 당시 겨우 서울에서 부산까지 편도로 갈 수 있는 돈이었다. 그렇게 나는 부산으로 향했다.
벽에 붙은 그의 일대기와 그림들, 그리운 아내에게 썼던 애절한 편지들과 그림들로 장식된 계단 갤러리, 그가 앉아서 「범일동 풍경」을 그린 장소로 추정되는 전망대까지 온통 이중섭으로 가득한 곳. 나에게 맞닥뜨린 상황 속에 피난하듯 범일동까지 왔다. 생계가 어려울 정도로 무너진 집안,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가족들, 세상에 인정받지 못하는 그림까지. 나와 무척이나 비슷한 그에게 끌려 이곳까지 온 나는 거리로 들어서며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보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거리에 들어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살아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화가 이중섭이었지만, 지금 이곳은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놓지 않고 완성한 그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에게 영감과 희망 그리고 추억이 되고 있었다. 명화는 시대를 거스른다. 예술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닌, 끝없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 속에서 온전히 순수한 자신만의 혼을 담아내는 것. 그것이 예술이었다. ‘예술은 무한하고 참된 애정의 표현이오. 참된 애정이 충만할 때 비로소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오.’ 마치 그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힘든 시간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왔다.
어느새 해가 졌는지도 모르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나는 깜짝 놀랐었다. 밤으로 바뀐 이중섭 거리는 놀라웠다. 아름답게 켜진 등불과 같은 조명. 고요함과 편안함이 다가오는 시간. 나는 거리가 내뿜는 아름다운 불빛에 이끌려 전망대로 향하는 희망길 100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 이중섭도 함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누는 상황 속에서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소. 가족과 민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리었소.’ 그와 나의 시간은 엇갈렸지만, 같은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수상작 전문은 《이야기 공작소 부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