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일동에서 시작된 향토음식,
조방낙지.
부산 곳곳에서 조방낙지 간판을 내건 식당을 볼 수 있지만,
진짜 조방낙지는 조방앞에서 시작됐다는 말씀!
부산 곳곳에서 조방낙지 간판을 내건 식당을 볼 수 있지만,
진짜 조방낙지는 조방앞에서 시작됐다는 말씀!
부산진시장에서 길만 건너면
그곳이 바로 조방앞!
자유시장과 골드테마거리가 자리 잡고 있는
바로 그 지역이다.
지금의 범일동 자유시장에서 부산시민회관 일대까지
아주 큰 공장이 들어서는데
그 공장은 바로,
줄여서 '조방'이었다.
1925년 공장 부지는 13만 5078m2(약 4만 평),
공장 및 건물 54동, 종업원은 3200명으로
부산 지역에서 가장 컸다.
비유하자면, 부산 시내 한복판에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초대형 공장이 있었다는 뜻!
조방은 일본 자본으로 설립된
전국 최대
섬유생산 제조공장으로,
1928년경에 이르러
한국 면 시장의 25%를 장악하며 승승장구했다.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바뀌어
1960년대1960년대에 들어서며 면방직 공업이 화학섬유에 밀려나면서 조방의 위세도 꺾이기 시작한다.
1968년 4월, 범일지구 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건물이 철거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조방.
하지만, 조방이 사라지면서
조방앞 시대는 제대로 시작된다!
조방이 사라진 자리에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서자
순식간에 부산의 교통 중심지로 떠오른 범일동!
교통이 좋으니 이 일대에
예식장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부산진시장이 혼수 전문 시장으로 번성했으며,
대규모 귀금속 상가(현재 골드테마거리)가
자리 잡았고,
대형 식당이 잇달아 들어선다.
조방은 사라졌지만
근처에 여전히 대규모 공장이 즐비했으므로
유흥업소도 늘어갔는데,
부산을 대표했던 나이트클럽
코리아시티가 그중 하나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 최초의 공공 문예회관,
부산시민회관이 조방 터에 들어서며
조방앞 시대는 더욱 꽃을 피운다.
‘조방앞’이라는
비공식 지명으로 우리 곁에 머무르는 그때 그 시절.
조방앞은 노동의 고단함과 젊음의 활기,
흥하고 쇠했던 한 시절의 기운을 모두 담고 있다.
조방낙지는
조방 노동자들에게 삶은 낙지를 안주로 제공하면서 시작됐는데,
양념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오늘날의 양념 낙지볶음으로 발전했다고 한다.